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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대왕과 과학 이야기
  • 세종대왕과 15세기 과학 발전시대
  • 세종대왕의 세기
  •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15세기를 세종대왕의 세기라고 부른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이 학문의 으뜸으로, 과학이나 기술학은 이에 비해 경시되었다. 또한 과학자들은 장인(匠人)이라 하여 명예를 누리지 못하였고, 경제적으로도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세종은 과학기술이 국가의 근간을 다지는 중요한 발판이라고 여기고 선진 과학기술을 수용하고 고유의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적으로 15세기에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에 이르렀다.
  • 세종의 과학 장려 정책
  • 세종은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여 집현전 학자들에게 일종의 연구를 위한 안식년인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를 두어 연구에 전념하게 하였다. 한편 기술혁신을 위한 지속적인 정책을 전개하여 과학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하였으며 기술개발을 위한 거시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기술 습득을 위해 인재를 뽑아 중국에 유학시키고 이들을 두뇌 집단화하여 공동연구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세종과 그의 아들 문종의 휘하에는 장영실, 정초, 정인지, 이천 등의 우수한 과학자들이 몰려들어 훌륭한 성과를 이룩할 수 있었다.
  • 조선시대 왕립 천문대 간의대
  • 세종은 관료와 학자, 기술자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여 간의대(簡儀臺) 사업을 성공리에 완수할 수 있었다. 1432년(세종 14)부터 7년여에 걸쳐 추진된 왕립 천문대를 건설하는 간의대사업에는 정초, 정흠지, 정인지, 이천, 장영실, 박연 등이 참여하였다.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약 10m 높이의 노대를 만들고 돌난간을 둘러 만든 간의대에는 혼천의, 혼상 등을 부설한 대간의를 설치하였다. 매일 밤 5명의 관리가 숙직하며 천체를 관측하였고, 24절기를 확정하여 농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종, 징, 북이 울려 시간을 알리는 자격루
  • 자격루는 1434년(세종 16)에 장영실 등이 제작한 물시계로서 종과 징, 북이 저절로 울리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장치를 부착한 것이다. 자격루의 원리는 맨 위에 있는 큰 물그릇에 넉넉히 물을 부어주면 그 물이 아래의 작은 그릇을 거쳐, 제일 아래쪽 길고 높은 물받이 통에 흘러든다. 물받이 통에 물이 고이면 그 위에 떠 있는 잣대가 점점 올라가 미리 정해진 눈금에 닿으며, 그곳에 장치해 놓은 지렛대 장치를 건드려 그 끝의 쇠 구슬을 구멍 속에 굴려 넣어준다. 이 쇠 구슬은 다른 쇠 구슬을 굴려주고 그것들이 차례로 미리 꾸며놓은 여러 공이를 건드려 종과 징·북을 울리기도 하고, 또는 나무로 만든 인형이 나타나 시각을 알려주는 팻말을 들어 보이기도 한다.
  • 위 사진은 중종 때 개량된 자격루로써 덕수궁에 보존(국보 제229호)되어 있는 것을 본 떠 제작한 것이다.
  • 위 사진은 측우기로써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세종 23년(1441년)에 세계 최초로 발명한 우량계이다.
  • OPEN(공공누리)
  • 빗물을 재는 그릇 측우기
  • 1441년(세종 23)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하였다. 측우기는 강우량을 측정하는 도구로, 이름 또한 ‘빗물을 재는 그릇’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육면체의 받침돌이 동그란 통을 받치고 있는 간단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통에는 주척이라고 하는 자가 있어 통 안에 고인 빗물을 잴 수 있게 만들었다. 각 지방에서는 측우기를 이용하여 비가 내리기 시작한 시각과 비가 개인 시각을 기록하고, 비가 그친 후에 그릇에 고인 빗물의 깊이를 약 2mm 단위까지 측정하여 중앙에 보고하였다. 이러한 절차를 통하여 조선 초기인 당시에도 전국적인 강우량을 측정할 수 있었으며 이는 대다수 백성들의 생업이었던 농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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